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Departures - Julian Barnes)
2018년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AirBnB로 잡은 숙소는 이케부쿠로의 오래된 빌라였다. 건물 외관에는 벽돌 크기의 흰 타일이 비늘처럼 둘러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내부 마감은 합판이었으며 담배 찌든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쇼와 시대의 건물임이 틀림 없었다. 내가 묶을 곳이 오래되고 퀴퀴하다는 사실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내가 깨끗하고 밝은 곳에서 환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그런 대접을 받으면 마치 피부과에서 미인들과 함께 진료를 기다리는 듯한 묘한 불편함을 느끼고 만다.
그래서인지 나는 도쿄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보다는 걸어다니기를 택했다. 나는 특히 백화점과 대형몰을 주로 다녔다. 내가 당시에 백화점 점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다른 국적의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밤에는 백화점 지하에서 산 초밥을 먹으며 가져간 책을 읽었다. 그 중 하나가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였다. 한 남자가 죽은 아내와의 기억을 짚어가며 서술한다는 설정의 따분한 책이라는 인상이 남아있다. 나는 여전히 그 책이 반스 문학의 백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에 좋지 못한 인상이 남은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연령과 반비례하는 정신연령 때문이었을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이름을 알게 된 지는 10년이 되었다. 뉴요커지의 기사의 사진에서 긴 턱을 가진 말쑥한 영국 남자의 사진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 뒤로 그의 에세이 책을 한 권 읽었다. '죽음에 관해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들'. 그게 무슨 내용이었더라? 우리 모두 죽음을 실은 의식하고 산다는 것? 기억나지 않는다. '플로베르의 앵무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그래 그건 사실이었다. 거짓이길 바랐지만.
10년이 지나가는 사이에 내가 설명할 수 있는 항목들이 변했다. 나는 직업을 바꾸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의 구성도 달라졌다.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잃었고 미래의 리스크를 가늠해 보아야 하는 관계가 늘었다. 머릿속으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인식하고 있기는 하다. 신체의 노화처럼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비단 중년보다는 청년에 가까운 급여를 받고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과거에 어떤 칼럼니스트는 사람은 중년기에 들어서서도 학생운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불완전 연소된 청소년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었던 나는 당시에도 이 표현이 적확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역시 다른 주제와 관련된, 태우지 못한 서류 뭉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바로잡고 보상받으려 했으며 결국 실패했다. 그것들은 이제 정돈된 목록의 형태로 내게 도래하지 않은 결과를 상상하게 한다. 이 감정은 괴롭힘에 가깝다.
줄리언 반스는 이 책에서 두 친구의 얘기를 다룬다. 그들은 대학 때 사귀었지만 결혼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을 이어나갔고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그리고 둘 다 다시 혼자가 된다. 줄리언은 우연히 이들의 재결합에 관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옳은 일을 하는 듯한 쾌감마저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헤어진다. 그 뒤의 일은 여기에 쓰지 않는다.
과거를 바로잡으려 하는 노력에 줄리언이 회의를 느꼈던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애초에 즉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쓰는 작가가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느꼈다. 나이가 들어도 내가 헛된 서류뭉치를 내려 놓지 못할 것이며 결국 그것들을 끌어 안은 채 죽음을 기다리게 될 거라는 걸 말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슬픈 감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체념에 가까운 해방감을 느낀다. 마지막 숨을 넘기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을 내 모습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감정이 그가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다루고자 했던 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연령이 낮은 독자를 위해서 다음 책에서는 죽음에 대해 좀 더 써줬으면 좋으련만. 작가의 마지막 책이라고 쓰인 광고에서 쓴맛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