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대소동
최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중 오전에는 공공기관에서 일종의 인증서 발급을 보조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이십 대 중후반의 청년들인데 친절하고 붙임성도 좋다. 이 사람들은 가끔씩 내게 농담을 하거나 나를 놀리기도 하는데 나는 이러한 행위에 특히 고마움을 느낀다. 농담은 친밀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지만 동시에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열 살 이상 차이나는 파트타임 아저씨에게 굳이 농담을 건넬 필요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이들에 배려심에 더욱 감사하게 된다.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매우 좋아했다. 과거에 친하던 이들도 관계의 회색지대를 넘나드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성향이 많았다. 반면에 나는 이런 일을 잘 하지 못한다. 거짓 진지함과 예의바름으로 서툼을 숨기려 노력한다. 더 늙어감에 따라 점원과 짧은 담소를 나누거나 할머니들처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옷이 잘 어울린다며 칭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슴도치처럼 웅크리는 기질이 본질적으로 변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이 일이 끝나면 회사로 출근한다. 십오 분 정도 점심을 먹고 일을 시작해서 아홉 시쯤 퇴근한다. 현재 회사 급여와 파트타임 수입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파트타임 일을 하나 더 구하고 있다. 패션 리테일은 전부 탈락했다. 글쎄, 나이 탓이다. 10년 전에 의류 매장에서 판매직을 했었고 이를 근무 이력으로 삼아 넣고 있지만 이십 대 초중반이 많이 근무하는 리테일에서 굳이 불편을 야기할 소지가 있는 사람을 뽑을 필요는 없다. 자존심을 버리고 과거에 일하던 회사에도 지원서를 넣었지만 연락은 없었다. 주방 일을 알아본 것도 이때쯤이었다.
며칠 전 지원서를 넣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강남의 유명한 상권에서 큰 규모의 사업을 하는 베이커리 카페였다. 사십 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매장 앞을 서성였다. 외국인들이 많았고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은 더 많았다. 나는 여기에서부터 겁을 먹었고, 내가 이곳에서 일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너무 멀고, 왕십리역에서 환승까지 해야 해. 출구로 나와서는 10분은 걸어야 하고. 그러면 한 시간 반은 걸릴 텐데. 이래저래 집에서 준비하려면 두 시간 반 전부터는 준비를 시작해야 해. 오는 시간도 한 시간 반을 잡으면 엄청난 시간 낭비야. 게다가 나는 여기서 제빵을 하거나 요리를 하지는 않잖아.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은 접시를 옮기고 쟁반을 닦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야. 그런 일이라면 굳이 여기서 할 필요는 없어. 설거지라면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거리의 매장에서도 많이들 구하고 있잖아. 그냥 지금이라도 알바몬에서 거절 버튼 눌러.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한 둘이냐고. 장사해봐서 알잖아? 사장도 그런 놈들한테 이골이 나 있다고.'
'하지만 잘 생각해 봐, 그렇게 생각해서 날려버린 기회가 얼마나 많았지? 스물 일곱 살 때를 기억해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서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교환학생 가지 않았지. 그 때 갔든지 안 갔든지 넌 그 이후로도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까지 삽질을 하게 돼. 그러면 그냥 갔다오는 게 나았겠지? 서머싯 몸도 거기서 수학했는데 나도 가볼 걸 그랬다고 있는 척 하며 말하고는 했잖아. 이게 또 그런 일이 될 수도 있어. 할까 말까 말할까 말까 살까 말까 할 때는 대부분 하는 게 맞아. 이불 찰 일이라도 있는 게 낫지, 그런 일도 없으면 늙어서 허무한 게 인생이라고.'
십 분 전에 들어가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직원은 곧 점장이 올 거라며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를 조용한 자리로 안내했다. 나는 앉아서 셔츠 버튼을 매만지며 어느 자리가 상석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옆옆 테이블의 회색 머리 일본 아주머니가 일행에게 '고레요쿠나이', '고레와이이' 하며 들으라는 듯 품평하는 소리가 긴장을 완화시켰다. 오 분 정도 지나자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강단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을 주방/키친 팀 팀장이라며 소개했다. 그가 요구했기 때문에 나는 이력서를 주었다. 그는 내 이력서를 읽더니 재차 확인하려는 듯이 주방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없다고 답했다. 남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나는 그 감정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주방 경험이 전무한 남자를 가장 바쁜 주말 이틀 동안 하루 종일 봐야 한다면 나라도 머리가 아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더해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염치 없는 일을 벌인 것처럼 느낀 나머지 집에서 업장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 근무가 어렵고 면접 기회를 주신 데 대한 죄송함 때문에 직접 말씀을 드리러 오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건 사죄라기보다는 내면의 소리와, 그 자리에서 지어낸 맘에도 없는 체면차리기용 거짓말이 합쳐진 불협화음이었다. 남자는 내가 하는 말들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마치 고통을 토로하는 환우회 동료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앉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이었고 가슴에 점장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팀장이 점장에게 말했다.
"그... 거리가 좀 멀어서 어려우시다고 하네요"
"아"
점장은 잠시 반응을 멈추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그래도 이왕 오셨는데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
"아뇨. 제가 죄송해서 그럴 수 없습..."
"그냥 보내드리면 제가 불편해요"
"아..."
나는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바빠 죽겠는 사람들 시간이나 빼앗고 있으면서 양심있는 사람인 척 빤히 보이는 체면치레나 하려 들다니 정말 최악이었다. 그 사람들도 이상한 지원자들을 많이 봤겠지만 염치 없는 데다가 못이기는 척 커피까지 얻어 마시는 이런 철면피는 처음 봤을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접싯물에 코 박고 죽는 생각을 했다. 아마 제일 비싼 체면차림용 정장을 입고 죽어있을 텐데 재킷 안주머니에 들은 유서에는 장례를 지내지 말고 토막쳐서 종량제 봉투에 넣어 일요일에 내놓으라는 내용이 쓰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