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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프로젝트에 대해서

관리인
관리인January 11, 20261 min read

블로그가 구색을 갖춰가고 있다. 어드민도 만들었고 api서버도 처음에 비하면 꽤 규모가 커졌다. 무엇보다 에디터가 쓸만해졌다. 노션처럼 '/'를 눌렀을 때 입력할 수 있는 플롯 툴바를 추가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미흡한 점도 보인다. 부끄러운 점도 많다. 우선은 발견할 때마다 예정업무 리스트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체크 처리하는 항목에 비해 추가되는 항목들의 증가세가 높아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기쁘다. 도시 한복판에 볏집으로 세워 놓은 움집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한 주에 한 번 카페에 와서 한 항목씩 체크할 때마다 후련한 기분도 든다.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이 일 덕분에 예전부터 좋아하던 카페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내용이지만, 한동안 카페에 다니지 못했다.

블로그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정한 시점은 내가 개발직군으로 처음 입사한 직후였다. 회사는 직원이 이 백여 명 중 개발자가 백 명 정도 되는 곳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C, C++ 개발자들이 많았고 웹 개발자들조차도 이 십 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함께 일해볼 수 있었던 웹 개발자들에 대해서만 말해보자면, 나는 그 분들에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분들이 은퇴할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공부를 이어 나가며 거기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점이 나로 하여금 나의 적성에 의구심을 품게 했다. 두 번째는 그 분들 중 그 누구도 개인 사이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소한 내가 아는 분들 중에서는 그랬다. 그 분들의 존재하지 않는 이 십 년 기록이 나를 슬프게 했다. 시간은 살같이 흐르고 남는 것은 기록뿐인데 말이다.

비슷한 또래 중에서 다른 플랫폼 서비스에 기술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나도 초라하게나마 티스토리 기술 블로그를 가지고 있었고 오늘을 기점으로 10년간 일기장으로 사용했던 네이버 블로그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게 영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위용을 떨치던 이글루스와 싸이월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타의에 의해 언제든 나의 시간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항상 불편하게 만든 점이기도 하였다.


우습게도 나는 첫 회사에서 퇴사한 이후에야 내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업무를 소화해 내기 위한 지식 습득 외에는 무언가 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변명이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작정 퇴사 후 이직준비를 하기도 바쁜 와중에 블로그를 만들겠다고 하니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게 정답에 가까운 것 같다. 포트폴리오 목적의 정적 사이트를 만든 뒤 빨리 면접을 보러 시간과 금전적 측면 모두에서 절약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 시기를 놓치면 내 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시기에 우연히 발견한(즐겨찾기를 해놓지 않아 잊어버린) 두 한국인도 내게 영향을 주었다. 한 분은 독일에서 육아를 하며 게임 개발자로 근무하시는 개발자셨는데, 대략 이 천 오 년의 기록부터 존재하는 워드프레스를 여전히 운영하고 계셨다. 대학생 시절부터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모든 기록들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다른 한 분은 유튜브에서 발견한 은퇴한 교수님이셨다. IT전공은 아니고 인문학 관련 전공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주 기초적인 구조를 가진 htt'p' 홈페이지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계셨다. 마치 이 천 년대 초반, 홈페이지 만들기가 시대의 유행이었을 때 만들어진 듯한 사이트였다. 그분의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매우 저조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만든 사이트에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기록해 나간 사람의 모습에서 존경심을 느꼈다.

이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한 시점에는 나만의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왜 좋을까?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돌아볼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 기쁘기 때문에? 그런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좀 더 솔직하게 생각해 보면, 아직 발생하지 않은, 나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발생 가능한 이벤트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주목 받고 싶은,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이 나이에 가장 후회하는 것은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회의적이며 소극적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세상에 돌을 던져야 세상이 파동으로 응답한다는 이치를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데서 기인할 위험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익명으로 사는 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한 습성이 새로운 사건을 마주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치명적 위험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물론 당시 내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좀 더 긍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가 허비했던 시간을 몇 배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얻고, 잃어버린 것들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싶다면서 개인 사이트는 만드는 행태가 모순적이기도 하다. 노출과 교류의 목적이라면 SNS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SNS 속에서 나는 자유를 잃어버리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나는 그들이 만든 룰에 따라야 하고 그들이 허용하는 방식의 컨텐츠만 업로드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볏짚일지언정 이곳은 나의 성이다. 나는 나의 성 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리하여, 이 장소가 생겨났다. 미래에 이 곳와 이곳에 쓰여진 글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오기 전까지는, 노인이 된 내가 이곳을 만들기를 잘했다고 추억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 채워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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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모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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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모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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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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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중인 RN(expo) 프로젝트의 템플릿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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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중인 RN(expo) 프로젝트의 템플릿2